시계 장사 후기 (내가 알바를 안 하는 이유)

내가 시계 장사를 하게 된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알바는하기가 싫었다. 편의점 알바도 해봤고, 해천탕 집에서 서빙도 해봤다. 그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고, 재밌는 사람들도 남겼다. 그렇지만 중요한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아니었고,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나이도 어리고, 4년제 대학도 다니고, 군대에서 유류병(부대 안의 기름을 관리한다. 보일러병이랑 전혀 다르다.)을 하면서 진짜 무거운 드럼통도 굴려봤다. 편의점 알바보다는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택배 상·하차나 노가다 하면서 짧게 몸 쓰는 것이 나아 보였다. 당장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최저임금 받으면서 일 할 이유가 없었다.

유류병이 굴리는 240kg 드럼통. 저걸 또 세우는건 진짜 아무나 못한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어야 가능하다.  유류병하니까 왠만한건 다 할 수 있다는 근자감이 생긴다.

내가 최저임금으로 알바를 하지 않는 2가지 이유
첫 번째 이유. 대부분의 알바는 나를 경험적으로 UP 시켜주지 못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는 일이 알바다. 나만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차별화된 일이라면 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카페와 편의점, 서빙 알바는 한 번 경험해 볼 만한 일이었다. 내게 이 일들을 계속하면서 돈을 벌기에는 경험적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경험을 한다면 최저임금을 못 받더라도, 무급으로라도 일할 용의가 있다. 실제로 내가 원하는 곳에서 일하기 위해서 그렇게 지원해 본 적도 있었다. 미필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는 했지만. 나는 학습과 경험을 젊은 나이에 많이 해봐야 나중에 잭팟을 터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경험이라면 푼돈은 안 받아도 된다. (맨날 돈이 없어서 허덕이지만…ㅜ)

두 번째 이유. 받는 돈이 너무 적다.
최저임금은 8,000원 정도이다. 나만의 시간(ex. 놀기, 공부하기, 책 보기, 산책하기, 글쓰기)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간당 8,000원의 일을 하면서 하루 4시간씩 혹은 주말 반나절을 일 때문에 포기해하긴 싫다. 전역하고 첫 복학인데 밤새워서 술 마시기도 힘들어지고, 책 볼 시간도 줄어든다. 노는 시간 줄어드는게 제일 싫다. 일을 하는 대신 다른 재밌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데, 시간당 8,000원은 그 시간을 포기하기엔 너무나도 적은 돈이다. 차라리 부모님 등골을 빨면서 내가 놀고 싶은 거 놀고 하고 싶은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아쉽게도 부모님은 계속 일하라고 등 떠미시는데 버티는 중이다.

불효자는 웁니다

장사의 시작

“무슨 일을 해야 내 마음에 들게 돈을 벌 수 있을까?”

“독서실 알바도 괜찮아 보이네. 돈은 얼마 못 받지만 그래도 공부를 할 수 있잖아..? 그런데 재미없을 거 같아…. PASS”

“내가 원하는 돈 벌고 시간을 유연하게 쓰려면 장사밖에 없네. 그리고 나 경영학과에 사업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장사를 해야겠다.”

투자한 돈을 전부 잃더라도 뭐라도 얻겠지 하는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부터 전역하고 나면 장사 or 사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군대 가기 전부터 했다. 아토피 전용 아기 옷을 팔아볼까, 천연 가죽 액세서리를 만들어볼까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군대에서 가치관과 희망 진로의 변화로 시간 투자가 많이 필요한 장사는 보류하기로 했다. 대신 물건을 때다가 파는 정도 수준의 일을 하면서 용돈을 벌어보자고 생각했다.

품목은 전자시계였다. 논산 앞에 가서 입대하는 사람들에게 시계를 팔기로 했다. 정말 우연히 페친 분 중에서 논산에서 시계를 팔아본 분이 계셔서 자신감을 얻어 시도를 결심했다. 도매상에서 30만 원에 시계를 100개 샀다. 부대비용까지 합쳐서 개당 3,000원 정도에 매입했다. 혼자서는 들고 다닐 수 없는 양이어서 친구를 데려갔다. 내가 먼저 시급으로 받을 건지 아니면 매출에서 일정 부분을 가져가고 싶은 지 물어봤다. 친구는 매출에서 가져가기를 원했다. 나는 매출에서 8:2로 나누자고 먼저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7:3으로 타협했다. 이것은 내가 넣은 돈에 대한 고려와 상대의 실력에 대한 고민 없이 내린 결정이었고 완전한 나의 실책이었다. 나의 지분이 100%라는 점과 친구의 실력을 고려했을 때는 9:1이 적절했다.

내가 파는 시계

첫 장사인 만큼 하루 전날 미리 논산에 가서 모텔에 숙소를 잡았다. 훈련소 앞으로 가서 어디서 팔면 좋을지 자리를 찾아봤다. 우리가 가져온 100개를 전부 다 파는 거 아니냐는 푸른 꿈을 꾸며 짜장면을 먹었고 탕수육까지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 친구와 시계 시간을 맞추고, 시계 판매에 필요한 판매에 필요한 팸플릿을 만들었다. 판매 연습도 해보았다. 연습하면서 친구가 걱정되었다. 일단 판매자로서 싹싹한 자세가 없었다. 친구가 숫기가 전혀 없고 그냥 목소리만 빽빽 지르는 데 사람들이 집중할 수 없는 소리였다. 그냥 소질이 전혀 없었다. 소음이었다. 내가 고객이라면 전혀 신뢰감도 가지 않고, 정말 쳐다보지도 않을 거 같았다. 잠자다가 잠꼬대로 내가 엄청나게 웃었는데 친구가 왜 그러냐며 날 깨웠다. 뭐 어쨌거나 대망의 날이 밝았다.

최근 1년동안 먹은 짜장면 탕수육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대망의 장사 날
훈련소 앞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심호흡을 하면서 설레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벤치 위에 시계를 진열하고 상황별로 대사 연습을 했다. 준비를 마치고 10시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장사를 개시했다. 시계의 실사용자는 입영대상자들이다. 그러나 구매자들은 대부분 함께 온 부모님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처음부터 공략 대상을 부모님으로 정했다.

10시: 사람들이 뜨문뜨문 온다. 말을 걸어본다. 부모님에게만 말을 걸어 호객행위를 한다. “어머니, 아버지~ 시계 준비하셨어요? 시계 안 하셨으면 시계 한 번 보고 가세요~” 반응 중 절반은 싱긋 웃으면서 가고, 절반은 그냥 무표정하게 지나간다. 기죽지 않는다. 옆에 있는 친구는 표정도 뚱하고, 일단 긴장해서 웃지를 못하고 남들이 보면 짜증 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 내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 때 친구도 한마디 거들어보지만, 오디오가 겹쳐서 계속 방해된다. 친구가 방해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호객행위를 하는게 부끄럽고 익숙하지가 않다. “군용 전자 시계 한번 보고 가세요~!” 민망하지만 크게 외쳐본다. 근데 내가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지 목소리에 힘이 없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느낌이다.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11시: 사람들이 점점 많이 오기 시작하지만, 아직 아무도 사지 않는다. 100개를 다 팔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으로 왔지만 한 시간 째 한 개도 팔지 못하니 점점 걱정된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니 쪽팔림이 줄어들고 목소리에 힘이 생기고 당당하게 호객행위를 하고 쫄리지가 않는다. 얼굴이 두꺼워진다. 친구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옆에 있는 게 방해가 된다. 서로 구역을 나눠서 팔자는 말로 구슬려서 저 멀리 건너편으로 보내 버렸다.

12시: 장사를 개시한 지 2시간 동안 1개를 팔았다. 이대로 마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 동안 어떻게 했을 때,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데이터가 조금씩 쌓여 가기 시작한다. 어떤 대사를 쳤을 때, 한 번이라도 눈길을 더 주는지 감이 조금씩 쌓인다. “훈련 때 필요한” 이라는 워딩이 사람들의 구매를 유발시킬 확률이 더 높았다. 공포 마케팅이다. 지금 시계를 사지 않으면 훈련소 생활이 불편할 느낌을 주는 것이다. 구매하지 않으면 훈련소에서 불편할 것 같은 느낌으로 세일즈를 해야 한 번이라도 눈길을 더 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쇼호스트들은 어떤 식으로 판매를 할지 봐야할 필요가 있겠다.

1시: 유동인구가 제일 많은 시기이다. 입영심사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들과 식사를 하는 가족들과 느지막이 도착한 가족들 등 사람이 많다. 이때가 피크다. 큰소리로 호객행위를 한다. 반복대는 거절과 무시에 친구는 맨탈이 나갔다. 초콜릿 먹으면서 벤치에서 쉬라고 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시계를 한 번씩 쓱 보고 간다. 1시부터 2시 사이까지 판매량의 90%를 판매했다.

대부분의 구매가 마지막에 발생해서 생각해본 나의 가설이다.

 “준비성이 좋은 편인 가족들은 시계를 준비한 상태에서 오고, 그러한 성향으로 일찍 도착한다.” 
준비성이 좋은 편인 가족들은 늦게 도착하고 그러한 성향으로 시계가 준비되지 않았다.” 

이 가설을 근거로 비용 절감 전략을 세워볼 수 있다.
서울-논산 버스비 13,000원, 모텔비 40,000원, 논산-훈련소 택시비: 10,000원 총: 63,000원
구매가 12시부터 대부분 발생함으로 서울에서 당일 출발해서 11시 무렵 도착해도 괜찮다. 따라서 논산에서 숙박할 필요가 없으며, 논산에서 훈련소까지 가는 택시를 타는 대신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서울-논산 버스비 13,000원, 논산- 훈련소 버스비: 1,300원 총: 14,300원으로 약 50,000원을 절감할 수 있다. 하루 매출이 30만 원 정도였다는 점에서 약 고정비용의 80% 이르는 비용 절감이다.

2시: 판매를 종료했다. 돈 받는 재미가 너무 쏠쏠하다. 돈 버는 것이 이런 재미인가 싶다. 재고구매 비용 25만 원 부대비용 10만 원 매출 25만 원 10만 원 적자였다. 남은 재고가 있으니 다 판매하면 그래도 용돈 정도는 남길 거 같다. 추워서 논산까지 가는 게 너무 귀찮고 힘들 뿐이다. 개강하면 조금 이동 거리를 짧게 하는 선에서 돈을 벌 궁리를 해야겠다. 온라인 판매를 주력으로 할 수 있는 업종을 선택하는 게 좋을 거 같다.

3시: 장사를 정리하고 함께 옆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아줌마(할머니)들이랑 이야기를 나눴다. 왜 내려왔냐, 얼마팔았냐~, 내가 가져온 꿀호떡 나눠드리면서 얼굴 도장도 찍고 다음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장사를 마무리했다. 한 한시간이 넘게 할머니, 할아버지랑 수다를 떨다왔다. 호칭을 이모라고 하면서 수다를 떨었는데 괜시리 장사꾼이 다 된느낌이었다. 우리 외할머니한테 이모라고 부르는 느낌이랄까.. ㅋㅋㅋㅋ 처음에 할머니라고 부르다가 혼이 났다. 이모라고 부르라고 하시더라.

장사하는 법도 알려주시고 꽤나 친절하셨다. 그중에 한분은 내 바로앞에서 장사하면서 내 앞에 있는 커플 고객 뺏어가려는 분도 계셨다. 결국 젊은 커플은 현금이 없었고 모바일 계좌이체만 가능했다. 그래서 나에게서 구매했다. 장사끝나고 나니 뒤끝 하나도 없이 좋은 말씀해주시고 잘 다독여주셔서 신기했다. 40대 토박이 장사꾼들이랑 이야기를 할 기회가 어디있겠나. 커피도 얻어먹고 도움 많이 받았다.

장사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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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
2 years ago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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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이 없으면 한 번의 성공을 유지할 수 없다. 간편 송금 앱으로 시작한 Toss는 거대금융플랫폼이 되었다. 간편 송금 앱에서 머물렀다면 지금 같은 성장 그리고 대형사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카카오가 채팅 앱으로만 머물렀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경영자는 꿈을 꾸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도태된다. 전략은 필요하다. (변화의 흐름을 못 읽어서 시계장사 망했다…^^) […]

최진영
최진영
2 years ago

회계학 교수의 본색 발동!
매출원가 = (기초재고 0 + 당기매입 300,000 – 기말재고(재고구매비용?) 250,000= 50,000
매출원가율 = 50,000/250,000 = 20(%)
판매수량 = 100 X 50/300
평균판매가격 = 250,000 / 판매수량 = 15,000(원)
맞나요?
‘가격정책’이 궁금했어요 ㅎ

시계장사를 한 이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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